김관기 변호사: 평범한 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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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진 자의 운명 원고(논설/저작)

드라마 ‘쩐의 전쟁’은 사채의 희생이 된 채무자의 운명을 비극적으로 묘사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
사람들의 집단적 기억에 영합하기 때문이리라. 사실 아득한 고대에는 법 자체가 채무자에게는 흉기였다.
비록 적법한 절차의 외관을 띠었더라도 개인의 존엄을 부인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법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폭력이라고 하지 못할 바 아니다.


고대 로마의 12표법에 의하면 채권자는 빚을 갚지 못한 채무자를 일정 기간 구금하고
그래도 갚지 않으면 채무자를 죽여서
그 시체를 나누거나 노예로 팔아서 그 대가를 채권에 비례하여 나누어가질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고 한다.

농업사회이던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몰락하는 자영농과 가족이 빚 때문에 노예로 팔려 가고
그들을 구하기 위하여 가까운 사람이 유혈투쟁까지 불사하는 사회적 갈등의 사례가 생겼는데,
상층 계급 출신의 현인인 솔론이 신체를 담보로 한 채무를 강제로 무효화하는 개혁을 단행하였고
그 이후 아테네의 상공업이 크게 번영하였다는 역사적 기록이 있는 점과
7년마다 이웃에 대한 채무를 면제하고, 동족 노예를 사서 6년 부렸으면 7년째에는 해방하고 빈 손으로 보내지 말라고
구약 성경(신명기 15장)에 적혀 있는 점은
빚을 지고 노예가 되는 것이 지중해 지역의 관습이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역사의 진전에 따라 채무자의 신체에 대한 합법적인 집행은 사라져간다.
중세 이탈리아를 무대로 한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사업가인 안토니오의 심장 가까운 곳에서 1파운드의 살을 베어 낼 수 있는 약속을 강제로 집행하려다가
전재산을 잃는 이야기는 신체담보약정의 유효성에 관한 고대 로마법이 중세 이후까지 전승되었으되
이를 빙자하여 사람의 생명을 노리는 것이 불법이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었음을 뜻한다.

노예제도를 일반적으로 부인하는 근대 국가에서도 채무자는 자유롭지 않았다.
채권자는 채무자를 감옥에 가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채무자는 채권자가 풀어 줄 때까지 구금되었으며 생활비도 채무자의 부담이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영주였던 윌리엄 펜도 채무자감옥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찰스 디킨즈 소설의 어두운 분위기도 아버지가 채무자 감옥에 갇힌 일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미국 독립선언의 기초자인 세번째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도 평생 빚에 시달렸고,
지금은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 받는 링컨 대통령도 여러 번 사업에 실패한 바 있으며,
남북전쟁 때 연방군 사령관으로서 후에 대통령도 한 그랜트 장군도 빚을 갚지 못한 채 죽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빚을 갚지 못하는 것이 오로지 채무자의 악덕이나 나쁜 행위 때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정직한 채무자라도 운이 좋지 못한 경우에는 빚을 갚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그 운에는 많은 유산을 물려 받은 것도 포함된다.

현대 사회에서 채무자감옥은 역사가 되었다.
기업은 불가피하게 위험한 활동을 내포하는데, 빚을 진 것을 이유로 기업인을 감옥에 넣을 가능성이 늘 존재한다면
아무래도 모험적인 사업에 뛰어들 기업인들은 줄 것이다.

대기업은 대량 소비의 뒷받침을 받아야 하는데 과다한 소비로 빚을 졌다고 채무자를 감옥에 넣기 시작하면
상당히 많은 사람이 채무자감옥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빚졌다는 이유 만으로 채무자를 구금하는 법은 오래 전에 폐지되었고,
나아가 현대에는 정직한 채무자는 파산절차를 통하여 거의 모든 금융채무를 면할 수 있다.
채무를 지고 있는 것 자체가 불합리한 속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노비를 해방하는 개혁을 단행한 것이 불과 100여년 전의 이야기이고
그 나마 외세의 가혹한 간섭 하에서 이루어졌다.
그 이전의 체제는 객사한 아비의 장사를 치르기 위하여 자신과 처자식을 노비로 파는 사례를 미담으로 인용하기도 하였다.
노비는 어떠한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니 사회적으로 죽은 상태이고
우리는 고대, 중세에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도 빚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갚아야 한다는 믿음이 남아 있고 채무자는 죄를 지은 자이다.

이와 같이 위축된 상태에서 채무자는 부당한 처우에 저항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압축성장을 통하여 법 제도는 선진국의 것을 받아들여 적용하려고 함에도 불구하고
사채업자가 채무자를 두들겨 패고 아이의 학교에 찾아가고 또 상가집에서 채무자에게 들어온 부조금을 강탈하고
몸 팔기를 강요하는 황당한 이야기가 현실인 것처럼 들리는 이유는
가까운 과거에 겪었던 가혹한 착취를 잊지 못하는 것 아닐까.

사람답게 행동하지 못하는 야만도 있게 마련이다.
국가는 이와 같은 야만에 대하여 형벌로 보복하고 교화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상이 아니라 늘 있게 마련인 변종이다.
사람들은 이상한 사태에 관심을 기울인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될 수 없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유심히 본다.
마찬가지로 사채업자가 저지르는 야만적인 방법은 이들을 악마화하기에 좋은 소재이다.
현실에는 이런 정도의 변종은 거의 없다.
빚을 면하기 위하여 채권자를 유인하여 살해하는 채무자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변종으로 치부된다.
변종이 무섭다고 해서 사회적 활동을 멈출 수는 없다.
변종은 제거하면 된다. 그것을 위하여 경찰서가 있고 교도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