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빚진 것이 죄라면 재산은 장물이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대략은...
많이 물려 받는 것이 실패에 대한 완충작용을 하는 것이고
또 그런 사람이 교육도 잘 받게 마련입니다.
반대로 없는 부모 밑에 난 자는 일단 실패하면 물러설 곳이 없고
또 제대로 경제교육도 못 받았을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과거 정주영 씨 같이 천부적인 감각을 타고 나신 분은 예외겠지요.
이제는 알 수도 없는 역사의 영역이겠지만
재산의 근원을 찾아가다 보면
고인돌 시절, 고대국가 시절, 조선왕조 시절을 지나면서 타인으로부터 착취한 것일 수도 있겠고,
일제 시대에 나라를 팔고 하사 받은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먹을 것을 아껴 저금해 두었을 수도 있겠지만,
조상에게서 자손에게로 내려가는 것 자체는
우연히 누구에게 태어났다는 것으로 횡재를 하는 것이니 엄밀하게는 정당성이 없지요.
그러기에 정직하지만 불운한 채무자를 면책하여야 한다는 말은
상인에게 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당연히 적용하여야 합니다.
가난하게 태어났다는 것 그 자체는 아주 불운한 것이니까요.
백번을 양보해서 빚진 것이 죄라고 한들 용서하고 살라는 것이
예수, 부처 님들의 가르침입니다.
너희가 남의 죄를 용서하지 못하겠거든,
나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으리라고 하신 말씀은 확실히 성경에 나옵니다.
Forgive us our debts
As we also forgiven our debtors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 용서하듯이...영어의 빚이 '죄'가 되었네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이것은 주기도문의 한 구절입니다.
도저히 빚진 자를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분이 크리스챤이라면,
기도할 때 위 두 줄은 빼고 외울 필요가 있습니다.
용서 받기 힘들테니까요.
소득불평등이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지표를 나타내는 지니계수(통계청 작성)에 의하여 증명되고 있으며
무늬만이라도 중산층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사람들의 박탈감은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대기업을 지원하는 총수요를 억누르고 있는 가계부채는
가진 자들에게도 부메랑이 되어 있습니다.
그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무슨 마이크로 크레디트라니요.
그것을 정부기관이 고리대금 식으로 운영하다니요.
적어도 가계부채 영역세에서는
말로만 중도고 말로만 서민 보호입니다.
빚지고 가난한 자를 규탄하지 않아야
그 자들도 가진 자를 증오하지 않을 것입니다.
금융채권채무는 그저 장사일 뿐이라는 의식이 확립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내부에서 대립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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