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기 변호사: 평범한 수재

kimkwanki.egloos.com

포토로그



맞습니다. 금융도 시장적으로 풀어야겠지요. 그런데 미소금융은 시장 '놀이' 같습니다 원고(논설/저작)

도덕적 해이의 양면성에 대해


그런데 미소금융은 시장 '놀이' 같습니다.
엄격하게는 시장적 방법이라고 할 수 없는...유사품이라고나 할까...

왜냐 하면, 제도권금융기관들이 시장을 통하여 공급해 주지 않는 사각지대를 겨냥하고 있으니까요.
loan shark(금융기관이 거절하는 고객을 상대로 불리한 조건의 계약조건을 강요하는)들의 놀이터지요.
정보의 비대칭성일 수도 있고, 협상력에서의 차이일 수도 있겠고...
이러한 '시장'은 금지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lagoon에 뛰노는 상어를 퇴치하는 것은 리조트를 운영하는 회사
어쩌면 지방정부의 책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생태론적으로 상어를 보호하자고 하는 것도 한 정책이겠습니다만...
결국 고리대 규제 여부는 입법자의 재량에 맡겨져 있는 셈이지요.
대금업 규제 문제와도 연계가 되네요.

그런데, 신용이 안 좋은 사람에게는 대출이 나가지 말아야 한다고 판단하여
신용을 제공하지 않고 있는 은행의 역할을 대신하여
공공적인 방법으로 신용을 공급한다는 것은 '시장'과는 모순되는 감입니다.
어쩌면 형용모순(oxymoron)이라고나 할까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제외하고) 시장이 성립하지 않는 곳에 시장을 연다는 것은...
미소금융이 삼성그룹, 현대자동차그룹, 엘지그룹 같은 곳에서 자발적으로 연 것이라고 믿을 사람이 글쎄...

물론 어쩌면 소비진작을 위한 헬리콥터머니가 필요할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예를 들어 소비쿠폰제 같은 것은 누진성을 가지니까 분배적 효과도 나쁘지 않습니다.
(오래 전 수강기억으로는, 화폐소득의 한계효용 같은 기술적 개념을 써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직관적으로 '역진적'인 인두세의 반대 되는 경제효과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사업실패로 채무에 시달리는 자들을 대량생산한다면 부작용이 장기간에 걸쳐서 남게 되겠습니다.

자기 선택에 의하여 돈을 쓰고 갚지 않고 빚에 시달리는 것은 자기 개인 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실패한 자들이 절망에 빠지는 상황이 주는 외부성(externality)입니다.
동정심 있는 가족들을 괴롭게 하고,
친지들을 괴롭게 하고,
또 빚에 시달려 몸을 팔고 범죄를 하였다는 이야기도 흔히 들립니다.
(이것도 개인적인 인성에 의한 개별 선택의 결과일 뿐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겠지만,
어찌되었든 '빌미'가 됩니다)
가난해서 제대로 먹지 못하고 씻지 못하는 자는 전염병을 옮길 수 있고
또 교육 받지 못한 인생을 남기게 됩니다.
사회불안의 원인이기도 하지요.
촛불 들고 뛰어나가는 사람들 중에는 "신용불량자"들이 무척 많았을 겁니다.
로렌츠곡선의 왼쪽에 속하는 사람들은 사상적으로도 마오이스트들의 온상이 되기 쉽지 않을까요.
네팔의 할리야라던가 채무노예를 철폐하는 조치를 마오이스트 정권에서야 단행하였다는 말이
그 관련성을 뜻한다고 봅니다.
잃을 것은 빚 밖에 없는 사람들은 현존 질서를 증오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물론 경제적 실패의 결과를 내부화하고 채무자를 보호하는 파산처리 절차가 제공되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그 자체가 사회적 비용인 것이고,
또 우리나라는 파산절차 자체도 미국처럼 진보적으로 운용되고 있지 않습니다.
기 소르망이 미국 번영의 원인으로 지목했던 파산절차도 카드회사의 로비로 2005년에
너덜너덜하게 변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또한 공정채권추심법을 비롯한 소비자신용보호법에 의한 규제에 의하여
파산절차에 의하지 않고도 허접한 직장은 유지하면서 평온하게 살 수 있는 미국과 여건을 달리합니다.

망했다는 것을 표시하는 상태로서의 "파산"이든
이러한 파산상태를 처리하는 법적 절차로서의 "파산"이든
늘어난다는 것은 상당한 사회적 자원의 소모를 결과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바람직한 대안은 아니라고 봅니다.
아, 참 파산변호사야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일거리 많아져서 좋은 면은 있을 겁니다만...
안과의사가 눈병 많아져서 살판난다 눈병이 늘어나라고 기원할 수는 없듯이...

아 참 저는 시장주의자입니다. 은행이 정부나 비영리단체보다는 더 정확하게 볼 것이라고 믿습니다.
차입중독증, 소비중독증 확실히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파산제도에 의한 면책을 받고도
왜 빨리 신용카드를 발급 받게 해 주지 않느냐고 난리치기도 합니다.
이들에 대한 신용제공 거부도, 신용제공도 각기 이유가 있습니다.
전자는 또 떼일까 겁난다는 것이고, 후자는 다른 채무가 취소되었으니 상환능력이 좋아졌다는 것이지요.
어디까지나 은행의 상업적 선택에 의하여 맡겨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고리대금융에의 접근이 인권적인 문제인 것처럼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은
여기에도 '정부'가 개입해서 해결해 달라고 한답니다만...)

원숭이에게 바나나를 '빌려' 주고 나면 돌아올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원숭이를 때리고 바나나 내 놓으라고 족치는 것은 낭비입니다.
원숭이를 용서하는 사회적 의식을 치르는 것도 낭비입니다.
외부성인 것이지요. 다른 사회구성원들에게 비용을 부담시키는...
외부성을 최소화하고 시장적에서의 거래가 대부분을 차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법질서 운용의 원칙 아닌가 싶습니다.

덧글

  • 2010/01/15 21:4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