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기 변호사: 평범한 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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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파산법 스케치 011 파산법스케치원고

파산절차에서 개인 채무 면책의 근거: 왜 우리는 용서해야 하는가

실패한 기업인의 보호는 개인파산제도가 추구하는 본래의 목적이다. 본래 면책 제도는 상인에게 인정되어 왔다. 주식회사 제도의 발달 이후, 모험기업에 대한 투자자를 보호할 필요성은 사라졌다. 그렇지만, 기업을 주도하는 창언인을 보호할 필요성은 남는다. 왜냐 하면, 기업활동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하는 핵심 경영인에 대하여 인적 보증을 요구함으로써, 투자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추가로 실현할 가능성을 얻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보증인에 대한 leveraging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잠재적 이익이다. 이것이 창업에 대한 장애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 앞에서 본 맥킨지 보고서의 내용 중 하나를 이루고 있다. 

기업활동에 대하여 기업인 개인에 대하여 보증을 세우는 것에 대하여는 중소기업계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로 인하여 현재 대부분의 은행에서는 기업 여신에 있어서 개인의 인적 보증을 받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를 소급적으로 취소하는 조치는 행하여지지 않았을 뿐더러, 정부의 지도에 따르지 않고 보증을 받은 것에 대하여 사법상 무효로 선언될 가능성도 크지 않다. 대가(consideration) 없는 보증에 대하여 강제력을 인정하지 않는 영미법과는 달리 우리 법은 보증한다는 무상의 약속만으로 강제된다. 게다가 실무는 도장 찍으면 그만이다. 아무것도 아니니 그냥 확인만 해 주고 가라는 금융업 종사자의 말에 잘못 생각하였다는 에 속았다는 증거항변이 인정되는 예는 없다고 보면 된다.

기업에 대한 회생 절차를 통하여 법인 자체의 자본구조는 말끔히 재조직되었다고 하더라도 기업인 개인의 보증채무는 그대로 잔존한 채 수년이 경과하도록 변함이 없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것은 기업활동 그 자체에 대한 장애요소가 된다. 그러한 보증채무로부터의 구속을 풀어 주는 것은 기업활동의 인센티브를 진작한다. 그런데, 이것을 푸는 과정은 개인 파산 밖에 없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상환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이유로 파산의 보호를 거절하면, 그것은 파산제도를 부정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파산제도의 효익이 가장 미치는 사람들은 장래 소득으로 자산을 축적할 인센티브를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논란이 많은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개인 파산을 하지 않았음을 자랑스럽게 내세우지만, 그것은 법정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보증 채무 전체를 취소 당할 우려가 있음을 인지한 은행과 사채권자들의 양보를 받아 낸 것이고, 그 근저에는 개인파산을 선택할 지도 모른다는 위협이 있었다.

현대에는 소비대중을 보호하는 역할에 면책 제도의 중점이 있다. 소비를 장려하는 사회에서, 주택, 자동차를 일시불로 살 수 있고 또 대학 교육에서 학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는 가계는 많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택담보대출금, 할부금을 갚아나간다. 또 많은 거래는 신용 즉 외상으로 이루어진다. 우리 사회의 저변을 이루는 많은 사람들이 전기를 켜고 전화통화를 개시하는 순간 채무자가 되고, 심지어는 버스를 타면서도 채무자가 된다. 그러는 한편 근로를 제공함으로써 채권자가 되어 매달 급여를 받아 채무를 해결해 나간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들은 질병, 상해로 인한 퇴직이나 정리해고 같은 불운을 겪기도 하고 감당할 수 없는 치료비에 시달리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부주의로 채무를 누적하기도 한다. 많은 경우 이와 같은 이유로 감당할 수 없는 채무에 빠지는 것은 그들만의 책임이 아니다. 이른바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은 지역사회에 뿌리박은 빚상어(loanshark) 만의 문제가 아니라 거대 금융기업도 편승하는 것이다.

1990년에 나(엘리자베스)는 40명가량의 이 은행 대출담당 중견 간부들에게 1일 컨설턴트로서 강영한 기회가 있었다. 시티은행은 재정난에 처한 카드 소지자들로 인해 많은 손실을 입고 있다면서, 내 연구결과를 이용해 그 대책을 제시해 달라고 부탁했다…저녁 때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나는 내 권고안을 요약해 제시했다. 그것은 그리 놀라울 것도 없는 한가지 생각으로 집약될 수 있다. 이미 명백한 재정난에 있는 가정에 대해서는 대출을 중단하라는 것이다… 나는 내 권고안이 몇 달 내로 실행되면 시티은행의 파산 관련 손실은 아마도 50% 정도는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사람은 회의실 안에 있던 어느 누구보다도 지위가 높은 사람이었다. “당신의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 대한 대출을 줄이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바로 그들이 우리의 이윤 대부분을 가져다주는 사람들이거든요” 
— 엘리자베스 워렌 외 1, 주익종 역, 맞벌이의 함정 p.201~202

이들이 중산층에 간신히 매달려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며 살 수 있도록 현대의 소비대중을 보호하는 것은 체제의 유지를 위한 성숙한 결단이라고 할 것이다. 연금이 있는 노동자는 다루기 쉽다고 비스마르크가 말한 바를 음미해 보자. 가진 것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거리로 나오기 쉽다.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운동에 왕년에 중산층이던 사람들이 뛰어 나오거나 심정적으로라도 동조하지 않았던가. 이와 같은 안전망(safety net)은 사회보장이 행해지는 선진 국가에서 공적 자금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와 같은 사회보험에는 당연히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의 문제가 있다. 그런데 경제학의 기술적 용어를 들먹이며 이런 것을 허용하여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경제학을 배운 것으로 가정되는 금융 전문가가 입에 담는 것은 너무나 primitive한 주장이다. 소비자 파산제도가 도덕적 해이를 일으키는 것이니 억압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내 놓으려면, 그러한 상황이 늘 발생하는 보험제도가 도덕의 타락을 일으킬 수 있으니 제한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 못할 바 아니다. 살인과 자살 같은 극단적인 형태의 도덕적 해이와 역선택에도 불구하고 보험산업이 상업적으로 번성하고 있는 것은 파산제도에 대한 도덕적 해이 운운하는 주장이 엉터리임을 증명한다. 남용은 가려내고 처벌하면 그만이다. 순기능이 충분한 제도에 대하여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문명인이라고 할 수 없다. 파산제도는 강제된 사회보험일 뿐이다.

채무자가 빚을 떼 먹으면 장래 신용을 얻기 어렵고 또 빚을 떼 먹은 자라는 낙인은 심리적 억지효과가 있을 것이나, 그럼에도 채무자가 파산에 호소하고 ‘새 출발’ 정책이 시행되면, 채권자는 변제 받을 가능성이 없다. 이것은 모든 사람의 자금조달비용을 늘린다. 모든 채무자는 당초부터 높은 이자를 부담하게 되고, 반면에 채권자는 특정의 채무자가 불이행할 때 생기는 손실을 부담하게 된다...

모든 금융계약에 이러한 ‘보험증권’을 추가하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일까? 물론 라스베가스 카지노에서 발생하는 도박손실을 담보할 보험회사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 보험에 가입한다면, 그 사람은 마구 무책임한 도박을 벌일 것이다. (이것을 도덕적 위험, moral hazard이라고 한다.) 더욱이 이와 같은 보험을 찾아 다니고 그 보험료를 기꺼이 지급하려는 자는 대부분 손해율이 높은 자들일 것이다. (이것은 역선택 문제, adverse selection라고 한다.) 면책이 개별 채무자에게 부여하는 ‘보험’도 개별적인 채무자에 대하여 이 두 가지 문제를 발생한다. 만일 재정적으로 파탄이 난다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새 출발을 할 수 있다면, 과도하게 차입을 할 유혹을 받게 될 것이다. 유사하게 만일 채권자가 이와 같은 위험에 대비하여 이자율을 올려야 한다면, 가장 높은 이자율을 부담하고자 하는 자는 면책의 혜택을 받을 개연성이 가장 큰 자인 것이다.

면책 정책을 옹호하기 위하여는, 이러한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변할 것이 아니라, 확실히 이러한 문제가 존재하지만 이것이 소비자신용을 파괴하거나 심각하게 왜곡할 정도로 심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힐 필요가 있다. 면책을 받을 권리는 도박보험보다는 화재보험에 유사하다. 개인이 자신의 주택에 화재보험에 들면 사실 경계심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고, 특히 방화범들은 특히 화재보험에 가입하고 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재보험시장은 활성화되어 있다. 보험이 있다고 주의를 덜 기울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심각한 것이 아니며, 방화범이 보험의 이익을 받지 못하도록 규칙을 정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개인들은 파산하게 되었을 때 잃을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면책을 받을 권리는 개인을 도덕적 해이를 문제 삼을 정도로 무책임하게는 만들지 않을 것이며, 면책에 관한 정책을 저하는 규칙은 채무를 고의로 면탈하기 위하여 파산을 남용하는 자들을 걸러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위 논변들은 어느 것이나, 왜 면책을 받을 권리를 개인이 자유로이 포기하지 못하는 것인 지를 설명해 주지 못한다. 개인은 화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을 자유가 있지만, 면책을 구할 권리를 포기하고 보험료를 절약하지 못한다. 채무자는 원하건 원하지 않건 새 출발을 할 권리를 ‘사야’ 한다. 물론 다른 모든 보험과 마찬가지로 채무자는 종국적으로 비용을 부담하는 자이다. 면책이 강제되는 법을 설명하기 위하여는 새 출발이 의미 있는 것 뿐만 아니라, 개인이 채무를 부담할 때 면책 받을 권리를 포기하도록 허용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여야 한다…이것은 두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개인의 재정적 불행은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준다는 것과 둘째, 차용하는 당시에는 위험을 정확하게 평가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한 사람은 재정적 불행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지극히 냉철한 차용자가 면책을 받을 권리를 사는 것이 그 값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자가 권리를 포기하는 것을 금할 수 있다. 개인의 재정적 불행은 차용을 한 채무자 본인에게 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 그리고 넓게는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두번째 문제는 개인은 항상 냉철하게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위험 평가에 능할 수 있지만, 개인은 돈을 빌릴 때 이성적으로 행동하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 Baird, Elements of Bankruptcy 3rd ed. 2001, p.34-36.

금융산업에서는 관대한 파산제도를 적용하면, 너도 나도 파산하고 빚을 갚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채무불이행과 파산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존재하고, 그 외에 품위있는 신용을 신용을 얻기 힘들다는 사정에 의하여 충분히 억제된다. 수많은 유명인과 전문직이 파산을 겪었지만 결코 그 사실이 공표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또 대부분의 개인파산, 개인회생에서 재단에 가산할 아무런 재산이 없는 것은, 채무자들이 능력을 다 하여 채무를 이행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관대한 소비자파산제도는 소비자에 대한 신용공급에는 제한을 설정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부정적 효과가 아니다. 세계금융위기는 과도한 신용으로부터 발생하였다. 개인에 대한 신용공급이 부족하여 문제가 발생한 때는 없었다. 개인에 대한 신용공급이 억압적 파산제도로 인하여 과도하게 되면, 산업에 대한 신용공급은 매력을 잃는다. 기업에 투자하는 대신에 금융기관은 주택담보대출에 투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금융의 왜곡을 방지하기 위하여서라도 파산은 필요하다. 관대한 파산제도는 금융계약의 치명적 결과를 내부화함으로써, 금융산업에 대한 일반적 규제로 작용한다.

면책 제도는 가진 것이 많지 않은 자로 산업에 진입하게 하는 효과를 준다. 즉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비자에 대한 가격 인상을 주도할 수 있는 독점력을 약화시킨다. 주머니가 두둑한 사람만이 산업을 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전반적인 잉여를 창출한다. 창조경제라는 말의 모호함을 제거하는 것은 개인파산제도를 언급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또 채무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가처분소득을 해방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것은 총수요를 진작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기업이 정당화되는 것은 그것들이 대중에게 봉사한다는 점에 있다. 그것은 대기업도 그 운명을 대중의 수요에 의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동네 세탁소, 치킨집은 어떠한가. 노예가 먹기만 찾고 일하려 하지 않는다는 관측은 이미 로마시대부터 있었다. 위로 올라가기를 꿈꾸는 근로자들로 구성된 경제는 활력 있다. 우리의 교육열로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아직은 이런 수준인 것 같다. 맥킨지 보고서에 의하면, 이런 활력이 점점 꺼져가는 것 같기는 하지만.